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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삼성신화와 혼인지
  • 작성자 관리자 (DATE: 2017-09-10 1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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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신화와 혼인지


다음카페출처  http://cafe.daum.net/yangssisociety/QbFs/3


유난히 신화가 많은 제주는 18천 신들의 고향이라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삼성신화와 얽힌 제주 탄생의 신화는 신비롭기만 하다.

모흥혈에서 탄생한 삼신인이 수렵생활을 하다가 멀리 동쪽 바닷가에서 3공주를 맞이하여 탐라를 창조한 삼성신화. 이를 두고 고 홍순만 선생은 "삼성신화는 탐라개벽신화"라고 말한다.

탐라개벽신화에서 삼신인과 3공주는 제주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마다 자신의 뿌리가 있듯 제주인의 뿌리 또한 궁금하다. 특히 연혼포는 3공주가 목함을 타고 들어온 곳으로, 오곡과 우마를 가지고 들어와 제주농경생활에 터를 이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혼포는 '결혼으로 이끌어 들인 포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제주의 동쪽마을 온평리


끝에 있다.


삼성혈 모흥혈에서 탄생한 삼신인과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삼공주의 비밀은 신화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신화를 재조명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고요 속에 잠들어 있는 서귀포시 온평리 연혼포구, 그리고 3공주가 목함을 타고 들어온 황루알, 신화의 발상지로 다시 깨어나면 어떨까?

 

삼공주추원사(三公主追遠祀)는 지금부터 4300여 년 전 탐라(耽羅)를 창시한 삼을라비벽랑국삼공주(三乙那妃碧浪國三公主)의 위패가 봉안된 묘사(廟祀)이다.


 

혼인지는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고((() 3신인(神人)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온 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 세 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을 삼아 이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곳으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마을 서쪽 지경의 숲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약 500평 정도의 큰 연못이다.

연못 남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된 현무암 비()가 세워져 있다.

아득한 옛날 모흥(毛興)이라는 곳에서 고을나(高乙那양을나(梁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3신인(神人)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과 어로를 하며 생활 하였다. 하루는 이들이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찬란한 나무상자가 떠내려와 해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3신인이 내려가서 목함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관대(冠帶)를 하고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가량의 3공주와 우마(牛馬) 및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3신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분 공주를 두셨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걸 아시고, ()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 연못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부터 제주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3공주가 들어 있던 목함이 발견된 곳은 속칭 '쾌성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이것이 도착한 해안은 '황루알'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여기에는 3신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국이 암반에 남아 있다고 한다.

삼국지위지그리고 후한서동이전등의 고문에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호족이라고 실려 있다. 육조 시대에 범엽이 지은 후한서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마한(馬韓) 서해의 큰 섬에 주호족이 있다. 그 인종은 몸집이 작고 언어는 한족과 같지 않으며 머리를 짧게 깎아 선비족과 비슷하다. 그들은 가죽옷을 입고 있는데, 윗도리만 걸치고 아랫도리는 입지 않고,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배를 타고 한나라와 왕래하며 교역한다.그런 주호족을 일부에서는 도서족 계통, 즉 일본의 원주민이었던 고루보그족이나 아이누족으로 보기도 한다. 그들은 일본 열도 전역에서 살았던 종족이었다. 체구는 작고 옷도 상의만 입었고 하의는 입지 않고 생활했는데, 사냥과 고기잡이를 주업(主業)으로 삼았던 종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은 1세기쯤에 있었던 한라산의 화산 폭발로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이 살았던 제주도는 제주 신화의 주인공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제주도에 전해 오는 신화에 따르면, 제주의 역사는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이렇게 세 을나(乙那)에 의하여 시작된다. 제주의 시조가 되는 세 을나는 독특하게도 제주 1동에 있는 삼성혈(三姓穴)의 모흥혈(毛興穴)이라는 세 구멍에서 솟아났다 한다. 가야나 신라고조선부여 등의 다른 나라 시조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태어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시조가 한 사람도 아니고 셋인 점도 다르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세 을나는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나물을 캐서 먹으며 이동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를 타고 온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각자 배필로 맞이했으며, 그들이 가져온 오곡종자와 송아지망아지 등 육축으로 농경생활을 했다.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婚姻池)는 세 을나가 벽랑국의 공주들과 혼례를 올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농업과 목축업을 시작한 뒤 점차 제 몫의 땅이 필요해진 세 을나는 각자 자기가 살아갈 터전을 결정하는 데 화살을 이용했다.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세 을나가 쏜 화살은 각각 일도이도 목록 수정 답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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